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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 경제 문화 및 역사

한국사 교육의 문제점 외국인이 바라본 19세기 조선

우리는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고 하면서 항상 일본을 안 좋은 시각으로 보고 이에 대한 보상과 정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일본과 한국이 아닌 제삼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인 자료를 가지고 평가를 하게 된다면 과연 우리가 항상 말하는 대로 일본이 역사를 왜곡하고 날조를 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를 한다면 우리의 주장이 맞다고 할 수 있을 겁니다.

 

'역사'라는 기록 자체는 한쪽으로 기울어져서 기록되는 태생적인 문제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진실이나 사실이 담긴 객관적인 기록들이 아니라 미화되고 감성이 듬뿍 묻어있는 것들이 많다는 것을 아셔야 합니다. 

 

한국사 교육의 문제점 외국인이 바라본 19세기 조선

 

세계의 역사를 보면 역사 속에는 수많은 전쟁과 침략이 있었으며, 그러한 과정을 통해 나라가 합쳐지고 다시 분리되는 시기를 수없이 반복해 왔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주변의 작은 국가들을 침략하여 큰 제국을 만들어 국민들의 번영에 힘을 써서 좋은 이미지를 남긴 국가가 있는 반면 큰 제국을 만들었지만 온갖 핍박과 노동착취로 인하여 나쁜 국가로 전해 내려오는 국가도 있습니다. 그리고 전쟁을 일으킨 원인의 정당성보다 결과에 대한 것들만이 역사에 기록될 뿐입니다. 그래서 모든 역사의 기록은 승자의 시선으로 기록되어 왔으며 아무리 선하고 잘못이 없는 국가가 침략을 당했을지라도 그저 제국 통합 과정의 한 부분 정도의 표현으로 기록되어 버립니다. 이렇듯 역사는 결과에 대한 기록이라고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역사를 보면 조선시대 당시 쇄국정책으로 인하여 서양문물을 받아들이지 못한 관계로 산업혁명 단계를 넘지 못한 관계로 주변국인 일본에게 제대로 전쟁 한번 해보지 못하고 나라를 뺏기게 됩니다. 한 나라를 정복하게 되면 그 나라의 결속력이 될 수 있는 문화와 언어 등의 말살정책을 시행하여 자신의 국가에 흡수가 되도록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는데, 산업혁명으로 인하여 모든 것이 바뀌고 있는 시대적 과도기라는 점에서 일본은 기존에 해오던 야만적인 수탈을 하지 않게 되었고 조선 경제의 발전은 곧 일본에게 이득이 된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기 때문에 조선의 색깔을 말살시키지 않고 조선의 경제가 일어날 수 있도록 기반 시설을 만들게 된 것입니다.

 

조선의 문화를 말살시키려면 그만큼 서로의 충돌이 생길 것이고 모든 면에서 대혼란에 빠지게 되면 조선은 식민지로서의 가치가 떨어지기 때문에 당근과 채찍을 적절히 사용하여 조선을 다스리기 시작한 것이죠.

 

힘이 없는 나라가 강국한테 주권을 빼앗긴 경우 대부분 그 나라의 흔적을 모두 지우는 형태를 보여왔었던 전례의 역사를 보면 일본은 그 당시에는 찾아보기 힘든 민주적인 방법으로 조선을 식민지화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일본은 그 당시 제국주의를 내세우며 이에 대한 식민지 국가를 운영하는 방법에 대해 이미 자세히 만들어 놓았는데, 그 방법은 조선시대 이전의 방법과는 완전히 틀린 것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정해 놓은 룰에 따르는 것을 상당히 자부심 있게 생각을 하는 국민입니다. 세계사를 보더라도 일본은 자신들이 정해 놓은 것은 절대적으로 지키는 정신을 많이 볼 수가 있습니다.

 

이러한 일본의 전략을 보더라도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일본이 마치 조선을 무력적으로 침략을 하여 모든 것을 수탈하고 빼앗아 가는 나쁜 침략국가처럼 할 수 없었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현재 일본입장에서는 한국에 대해 조선시대 당시의 미개한 나라를 서양문물을 도입을 해주고 발전시켜 은혜를 모르고 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일본 입장에서는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지극히 당연한 것이고요.

 

국민의 1%의 양반 사대부 계급이 온 국민들을 노예처럼 부리면서 노비들이 낳은 딸자식은 양반집 노리갯감으로 성착취를 당하는 것은 아주 일반적인 일상이고 양반이 노비를 죽여도 벌 받지 않으며 그런 1%를 제외한 나머지 국민들은 굶주림에 길바닥에 시체가 뒹굴고 있는 조선시대를 보았을 때 과연 이 나라가 침략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을 했을까요?

 

조선땅에 있는 천연자원이 목적이라 할지라도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쇄국정책을 고수하여 도시 사이의 길조차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조선땅에서의 자원 확보라는 것은 엄청난 제반 투자를 필요로 하는 정책인 것입니다. 일본이 한국에서 그냥 알맹이만 쏙 빼먹고 나온 것처럼 사람들은 생각하지만 절대 그렇수 없다는 것이죠.

 

그리고 제국주의를 표명하고 많은 국가들을 합병을 하고 관리를 하는 입장에서 억압과 수탈로서 다스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도 일본은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일본은 필리핀이나 중국 등에서 억압보다는 경제부흥에 초점을 맞춰 나갔던 것입니다. 필리핀 같은 경우 일본의 식민지 시정에 대한 역사에 대해 상당히 호의적입니다.

 

일본 때문에 나라가 발전을 하였고 많은 것들을 남겨 놓고 갔기 때문에 지금의 필리핀이 있을 수 있었다는 말을 합니다. 물론 전쟁으로 인하여 국토가 훼손되고 많은 사상자가 있었지만, 모든 일에는 과오가 있는 것이고 그것을 분리하여 긍정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부분은 받아들이는 것이죠.

 

한국처럼 일본에 관한 말만 나오면 반사적으로 적대감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마인드에서 더 정확하고 논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다는 것은 더할 나위도 없는 것이고요.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는 아직까지도 일본에게 무언가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일본은 제국주의를 진행하다가 미국에 항복을 하여 한국은 자동적으로 독립을 하게 되었던 것을 아실 겁니다. 일본은 미국이라는 나라에 항복을 한 것이지 한국에 항복을 한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미국의 배려로 항복 관련 문서 조항에 따라 식민지 지배를 당했던 국가들에게 보상금을 지불하도록 하여 보상금을 받았을 뿐 승리의 주체는 한국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 보상이 적었다 할지라도 일본은 패전 후 해야 할 의무수행을 착실히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본에 대해 패전국으로서 역 사이 왜곡을 바로 잡으라고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일본 입장에서는 한국으로 인한 패전을 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원하는 대로 정정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 확고한 것입니다. 일본에게 있어서는 한국은 그냥 식민지였고 자신들의 문물에 의해 짚신을 신고 파발마로 연락을 취하던 나라를 구두와 전화기를 사용하게 만들어 준 은인 같은 나라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이사벨라 펄프라는 영국 출신의 여행광 여성은 1897년 이미 환갑이 넘은 나이에 처음 '조선'이라는 나라를 방문했다고 합니다. 당시 이방인의 내국이 없었던 터라 고종과 명성황후를 아련도 하였다고 하는데, 여행광인 그녀가 예 한국인 조선에 대해 책을 출간하게 되는데요. 오랜 여행 경험에서 오는 객관적인 입장으로 바라본 당시 시대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기록을 남겨 둔 장본인 셈입니다.

 

그녀는 시기적으로 조선의 동학 농민혁명과 청일전쟁을 겪은 시기여서 그녀가 남긴 기록은 아주 귀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녀가 한국인들의 인상에 대해 남긴 기록들을 보면


"그들은 중국 인가도 일본인과 도 닮지 않은 반면에 그 두 민족보다 훨씬 잘생겼다. 한국인의 체격은 일본인보다 훨씬 좋으며 대단히 영리하고 똑똑하다. 한국인들은 스코틀랜드식으로 말해 말귀를 알아듣는 총명함을 상당히 타고났다.

 

외국인 교사들은 입을 모아 한국의 능숙하고 기민한 인지능력과 외국어를 빨리 습득하는 탁월한 재능이 있고 중국인이나 일본인보다 훨씬 좋은 억양으로 더 유창하게 말한다.

 

한국인들의 일상적 표현은 당혹스러움을 느끼게 할 정도로 활기차다. 얼굴 생김새는 가장 잘 생긴 사람들을 기준으로 힘이나 의지에 강인함보다는 날카로운 지성을 나타낸다. 한국인으로 확실히 잘 생긴 종족이다. 체격도 좋은 편이며 성인 남녀의 평균 신장은 160 3.4 cm이다.

 

여자는 세상에서 제일 보기 흉한 옷 때문에 몸매가 못생겨 보인다. 남자들의 힘이 세서 지게로 45kg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그리고 수도인 한양과 왕족의 대해서는 이렇게 기술을 했는데요.


25만 명의 인구를 가지고 있으며 세계의 거대한 수도 중 하나로 어느 것도 이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없다는 것을 인식하고 그 뜻을 음미할 수 있을 때까지는 일 년의 세월이 필요했다.

 

왕비는 그 당시 40세 가 넘었으며 매우 멋있어 보이는 말을 시용이었으며 머리는 윤기가 흐르고 칠흑같이 검었으며 얼굴빛은 상당히 창백했는데 그 창백함은 진주빛 분을 발라 더욱 희게 보여준다.

 

이렇듯 그녀는 당시 조선인의 민족적 모습에 대해서 후한 점수를 주었는데요. 하지만 그 당시 조선인들과 한양 성내의 위생상태는 매우 끔찍할 만큼 불결하다고 표현을 했고 또한 정부와 관료들의 무능함과 파렴치함에 대해서도 제삼자의 입장에서 가차 없는 비판을 날리기도 했는데요.


"관 안에는 한국의 생명력을 빨아먹는 기생충 같은 관료들이 득실 거린다. 그곳에는 모자를 쓰고 푸른색이 많은 조잡한 면직 제복을 입은 군인들과 포졸들, 문필 가등 부정한 관리들이 바쁜 척하면서 있었다. 그럴싸하게 서예 도구를 옆에 놓고 하루 종일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국봉을 받아가는 것이다."


조선 관료들은 살아있는 민중에 피를 빠는 흡혈귀 같으며 백성들은 상당히 게을러 보인다고 처음엔 생각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국인들이 자기 노동으로 획득한 재산이 전혀 보호되지 못하는 체제 아래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러시아 만주에서의 한국인들의 에너지와 근면함을 보았을 때 그들의 검소하고 풍족하고 안락한 집을 보고 난 후에 그녀는 조선의 국민에 대해 오해를 하고 있었다고 깨달았다고 합니다.

 

관리들의 수탈이 아주 견딜 수 없게 되고 생존할 수 있는 최소한의 수입마저도 빼앗겼을 때에만 한국의 농민들은 폭력을 통한 절망적인 방법에 의지하게 됐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죠. 그녀를 비롯한 다른 외국인들 또한 조선이 망했던 가장 중요한 원인으로 관리들의 부정부패라고 기록해 놓았는데요.

 

백성들에 대한 관리들의 수탈이 결국 조선인들의 활달한 생명력과 용맹성을 잃어버리게 한 중요한 이유로 보고 있습니다. 조선이 잠재력을 현지화시키고 부유한 나라가 될 조건은 공평성과 사회적 정의가 존중 맞도록 만들고 지배층에 의한 착취를 금지하며 친구나 친척의 의존에 살아가는 빈곤의 문화를 일소하고 무엇보다도 사유재산이 보호 되게 만들면 조선은 반드시 부강한 나라가 될 것이라고 그녀는 보았습니다.

 

그러나 조선인들에게는 그런 개혁의 능력과 의지가 없기 때문에 러시아나 일본의 보호기 나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녀의 진단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뽕 한 사발 들이킨 역사학자들, 우리 민족끼리만 주야장천 외치는 전교조 교사들의 교육관에서 벗어나 좀 더 객관적인 시선에서 과거를 바라보았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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